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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글

걱정은 죽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것

우린 두려움을 자주 느낀다.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이다. 

 

우리는 채집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님의 뇌와 같은 뇌로 현대사회를 살아간다.

그때는 두려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았고 그로인해 번식에도 유리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있다. 

 

현대사회는 누군가에게 잡아 먹히거나 자칫 잘못하면 어딘가에 빠지거나 이럴 위험이 없다. 

지금의 두려움은 오히려 삶을 단지 살아있게만 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조상님의 원시시대야 살아있기만 하면 되었지만,

우리도 그런가?

 

우리는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세계를 탐험한다.

이런 세상에서 단지 생존에만 관심을 둔다면 인생을 낭비하기 쉽다.

 

우리 유전자는 단지 살아있기만을 바라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많은 경험과 자아의 발전을 추구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어도 우린 죽는다.

우리 유전자가 대략 존자를 보살필정도로 사는 것이 유전자 복제에 유리하다 판단내렸기 때문이다.

 

우린 죽는다.

그런데 대게 우리의 두려움은 그 근원은 죽음이지만 그보다 낮은 수면에 있는 두려움은 남들의 시선이다.

그리고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금 삶이 힘들어도 견딜만 하면 미지의 세계로는 발을 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도 아니다.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 무엇보다 가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인간에게 크게 작용한다.

 

그렇지만 알지 못한다고 해서 죽을 만한 일이 우리에게 펼쳐지는가?

원시시대에 알지 못하는 곳에 발을 디디는 것은 죽음의 위험이 아주 컸다. 

그래서 현대 시대의 우리도 알지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죽음처럼 여긴다. 

 

이제 두려워 할 것은 노화와 죽음 뿐이다. 

그런데 그건 어차피 어쩔 수 없는 것.

 

그래서 우린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두렵다면 자신이 현재 상태로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때문이다. 

 

당신은 나이를 먹고 신체가 변하고 뇌가 변할 것이다. 

호르몬이 변할 것이고 세상이 변할 것이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도 당신과 같이 지식이 달라지고 경험이 달라지면서 변화할 것이다. 

 

현재는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