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17)
옳은 말보다 존중이 먼저다 옳은 말이면 상대에게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옳은 말 하는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비하다. 내가 네 위에 있고 너보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하는 열등한 존재다. 이것이 옳은 말을 하는 상황의 그림이다. 가까운 누군가가 당신과 함께 하지 않으려 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존중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나를 무시하는 상황에 나를 오래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옳은 행동이다. 그럼으로 옳은 말을 하는 상황을 만들면, 상대는 그 상황을 떠나려 할 것이다. 당신도 원하는 것이 좋은 상황으로의 변화지, 말로써 상대의 자존감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설사 내면의 무엇이 그것을 바란다 하더라도, 결국 외로워지는 길이다.
내가 해결 할 수 있다면 남탓하지 않는다 남탓의 이유는 무기력이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이유(남)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눈이 몸 안에서 밖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지는 모른채 남의 모습만 바라본다. 누구든 완벽하지 않고 누구든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환경상의 어려움을 눈에 보이는 사람탓을 하면서 자신을 외면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개선할 수 있는 지 알 수 있다. 이 세상은 당신에게 맞춰지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맞추라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을 그대로 보고 자신도 그대로 봐야 한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무기력에서 탈출할 수 있다. 무기력은 자신이 변화할 수 없다고 믿기에..
아닌 줄 알면서도 지속하는 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 부른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아닌 줄 알면서도 계속 지속하는 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란 말로 현실부정 한다. 고통스러운, 잘못된 길이라도 그 길을 다른 방향으로 트는 데는 조금 더 큰 용기와 고통과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성을 변경하는데는 조금 더 큰 힘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 잘못 들어선 길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한다. 지금보다 좀 더 힘들어야 벗어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최근 저말을 쓰는 사람을 봤다. 그 사람도 이제 그만해야하는 생활인줄 알기 때문에 그 생활을 '운명'이라고 했다. 나도 그말을 쓴적이 있다. 지속해야하면 안되는 상황을 머물 때 우리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다. 언젠가 끝날 것이란 것을. 하루 빨리 나와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그럭저럭 견딜만하다면 계속 간다. 하지만 결국..
죽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무기력한 상태에 놓일 때가 있다. 아무 힘도 없고, 아무것도 내 의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그래도 우린 모두 죽지 않는가? 죽음이 올 것이다. 이제껏 죽지 않은 이가 없으니 우리도 죽을 것이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또 괜찮다. 어차피 죽게 될 인생 즐겁고 힘차게 살아가자. 더 많은 시도도 해보고, 더 좋은 것을 경험하자. 더 많은 성장을 이루고, 더 많은 배움을 얻자. 전쟁시에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한다. 죽음이 보이면 삶이 보인다. 그리고 자실기도를 하는 사람도, 예를 들어 다리에서 몸을 던 진 순간 엄청난 후회가 밀려온다고 한다. 우린 죽지 않지 않는다. 죽을 것이다. 그런데 뭐가 걱정인가.
존중받지 못해 상대를 짓누른다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을 겪을 때가 있다. 대게 가까운 이에게 격는다. 모르거나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굳이 무시하거나 짓누르려고 하지 않는다. 가까운이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 빨리 자신의 위치를 찾고자 상대를 짓누르려 한다. 상대를 짓눌러서 자신이 존중의 위치로 올라가려하는 것. 그리 멀지 않은 과거 물리적 힘의 논리로 지배되던 세상에서는 먹혔던 일들이다. 지금은 물리적힘으로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다. 상대가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는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았던 것이 먼저 선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존중받지 못한 상황에 이르르면, 더욱 나를 스스로 존중해주자. 더 기꺼이 수면을 허락하고, 더 기꺼이 평화를 허락하자. 더 나에게 교양을 전달하고 더 건강을 전달하자. 나를 상대적으로 세우지 말..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 같은 어려움을 겪기 바라는 것 일반적으로 대게 하는 그런 일들과 다른 방식으로 산다면, 다른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고 다른 상황을 살아가면서 겪는 다른 어려움이다. 그런데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하면서, 남들과 다른 어려움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인생은 모두가 똑같은 상황, 똑같은 어려움을 경험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그런 것이 공편한 것도 아니다. 세상은 큰 덩어리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고자 한다면 남들이 겪지 않는 문제들을 해쳐나가려 해야 한다. 모두가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는 없다. 누구는 어떤 기준에서 더 낫고, 너 못났으며 또 다른 기준에서는 다르다. 본인 스스로가 다른 걸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타인에게 외치면서 본인은 ..
폭력에서 나를 지킨다 내가 하는 폭력에서, 그리고 나에게 오는 폭력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 오늘 문득 장난처럼 말한 내 말이 폭력적이다고 생각했다. 사랑받지 못해 항상 화가나있는 사람처럼 누군가를 공격했다. 그런 삶은 이제 더 살아가려 하지 않겠다. 나의 폭력을 내가 근절하고, 타인이 나에게 하는 폭력 역시 허용하지 않겠다.
남들처럼 사는 것 남들처럼 살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속마음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고 싶은 것이 클 것이다. 남들처럼이라는 말은 사실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남들' 처럼 산다는 것이다. '보이는' 이라는 것이 문제다. 잘산다는 게 무엇일까?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내면을 알차게 가꿔서 그것이 결국은 외적으로도 드러날 것이다. 좋은 옷, 좋은 차로 드러난다기 보다, 안정감 있는 태도 좋은 인상, 건강, 자신감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려면 남들을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살찌워야 하고, 자신을 객관화 해서 자신의 강점, 재능, 의미 있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남을 볼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시장은 볼 수 있어도, 남이 뭘 어떻게 하고 다니는 외형을 볼 필요도 없고, 그들의 내면을 알기도 어..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 남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 삶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것이다. 자기 삶을 사느냐고 너무 바쁠텐데, 남에게 뭐라고 할 시간이나 정신이 없다. 자기 삶을 꾸리고 만드는 것에도 상당히 대단한 에너지와 집중이 요하기 때문이다. 대게 남들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 오히려 회피하기 바쁘다. 자기는 뭔가 하지 않고 남을 조종해서 거기서 뭔가 얻으려는 심상이다. 그게 먹힌다면 할만한 일이지만, 먹히기는 쉽지 않다. 남에게서 뭔가를 얻으려는 방법은 쉽지 않다. 남에게 준다면 얻을 것인데, 주지 않고 얻으려고만 하는 것은 여간해서 쉽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크다. 당신의 삶을 산다면 인생이 너무 짧고 부족할 것이..
응당 소화해야 할 고뇌를 약물로 회피한다면 살다 보면 소화해야할 힘든 시련, 고뇌가 찾아온다. 그럴때마다 약물로 회피한다면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살든 우주적 입장에서 보면 별것 아니다. 우리가 핵전쟁으로 지구를 황폐화 시킨다고 한들 우주의 시간과 이벤트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인생도 그런것 같다. 인간은 뇌를 만족시키는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 같고, 그것이 무엇이든 별로 중요한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시간을 앞당기는 발견을 한들 전체시간에서 보면 별 의미 없다.
오늘처럼 몇 년, 몇 십년을 사는게 무엇일까? 오늘처럼 계속 살아가는게 무엇이 되는가? 그냥 별다른 영향없이 죽어가는 과정만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기분이 좋은 하루를 매일 살아간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죽는 것은 어차피 시간에 따른 변화인데, 그 변화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 사람의 존재로 타인이 받는 좋은 영향이 없다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0이다. 혹은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 모든 생명 존재의 목적이 유전자의 전파인 상황에서 그것과 상관없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막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확실히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오래 살아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알겠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의 유전자를 어떻게든 퍼뜨리길 원할지도 모른다.
용기를 내지 못해 확실한 기분에 머무르려 한다 기분이 좋고 행복하면 삶이 좋은 것인가? 분명 좋은 기분은 더 좋은 시도를 할 수 있게 마음을 가볍게 한다. 항상 좋은 기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준비가 된다면 좋겠지만, 좋지 않은 기분이라면 그 기분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인생이 끝날 수 있다. 컨디션을 좋게 유지해서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벼운 상태를 만드는 것은 좋은 것이다. 행동의 이유가 기분이 되어서는 안된다. 괜찮은 삶이란 좋은 기분을 오래 유지한 삶이 아니다. 많은 도전을 하고 많은 이들에게 가치있는 삶을 제공한 삶이 괜찮은 삶이다. 용기를 내지 못해 확실한 기분에 머무르려 한다. 기분이 종점이 아님에도 기분으로 향해 나아가고, 도망가고 숨는다. 기분만 어떻게 된다면 괜찮은 것처럼.
밥은 죽지 않을 만큼 꼬박 꼬박 먹는다 우리는 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꼬박꼬박 먹는다. 그래서 우리가 죽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이룰 수 있다. 밥을 3끼, 약 40분간 시간을 쓰면서 먹는다고 하면 매일 120분은 우리가 꼭 무엇을 하고 있고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우리는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패턴을 어딘가에서는 쓰고 있다.
이타적이면 좋은건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이타적이면 좋은건가? 이기적인것이 나쁘면 삶에 마이너스일 것이고 결국은 손해를 막기위해 이타적이 될것이다. 삶의 벨런스 이유로 이타적이 될것. 이타적이어서 손해가 나면 삶에 위협이 되므로 이기적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밸런싱을 위해 이기적이 될것. 이기적이어서 삶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그냥 기본 밸러스일수있다.
내 인생을 외면하면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사용한다 내 인생 외면하고 계속 딴곳만 보고 있나요? 외면하면 알아서 언젠가 좋은 곳에 도착해있겠지.. 하고 있나요? 외면한 당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을거에요. 다른 사람이 당신 대신에 실컷 사용하고 버리고 나면 당신은 자기 인생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거에요. 다른 사람이 함부로 사용하기 전에 내 인생을 돌봐주세요.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당연하게 생각한다 연인, 친구, 가족이라면 그것이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당연하게 생각한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모르는 사이에서 당연하지 않을 일들이 당연해지지 않는다. 가깝다는 것은 더 좋은것들을 더 많이 나누는 사이다. 당연하지 않다. 원래그런것도 아니다. 그래왔으니 지나쳐도 되는게 아니며, 성격이 원래 그런것도 아니다. 고마운건 가까워도 고맙고 아픈건 가까워도 아프다.
용기가 없어 자기 인생을 갔다 버린다 중요한 결정들에는 용기가 따른다. 그 용기를 내지 못해, 자기 인생을 갔다 버린다. 인생을 버리는 것 만큼의 용기가 어디있을까? 지금 즉시 그 결정의 결론이 보이지 않을 뿐, 인생을 버리는 것은 즉시 유효하다. 자기 인생을 버리는 것 이상의 타격이 없음에도, 오늘도 우리는 용기가 없다는 감정에 인생을 버린다.
길은 내가 모르는 곳에 있다 흐릿하고 다른 벽들에 가려진 나의 길을 지금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내 미래까지 지금 다 알고 싶고, 그래서 안심하고 싶다. 안전하다는 믿음을 얻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불확실 보다는 확실한 불행을 택한다. 불행해도 내가 견딜수있다고 생각하기에 안전하다 생각한다. 대게 그 불행이 그 사람이 경험할 최악이 대부분임에도 그렇다. 우리의 길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 있다. 그저 앞으로 나타날 내 길에서 더 잘즐길 수 있도록 지금 현재에서 부단히 수행하고 성장해나가면 그만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더라도, 한 걸음도 걷지 않더라도 결국 죽음이라는 곳에 도달한다. 인생은 시간이다. 공간이나 행위가 아니다. 어떤 상태에 이르러야만 안전한 것은 없다. 결국은 다 파괴된다. 우리는 그저 수행하고, 일어나는 기..
감정이 깊고 강하더라도 지혜도 그 같은 것은 아니다 더 크고 강렬한 감정이 더 중요하고 더 확실함을 말하는 것 아니다. 초딩학생이 강렬한 감정으로 미적분을 하려해도 안되는 것 처럼, 기분이 나의 확인을 말해주지 않는다. 확신하려하지 말고 계속 시도하고, 성장하자. 그렇게 사는 것이 그냥 사람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확신없이 더 시도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인생이다. 좋은 기분이 가득한 인생이 좋은 인생일까? 자신을 사랑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해내는 것, 그렇게 삶을 만들어가자.
왜 편해야 하는가? 우리는 뭘 할때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한 길을 찾는다. 편하려고 한다. 편함에 휴식이 있긴 하지만, 휴식으로만 성장할 수도 뭔가를 이뤄낼 수도 없다. 편한 휴식은 좋지만, 편한 길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편하다는 것은 나의 형태가 위협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내 형태를 변화시키지 않고는 고치가 될 수도, 나비가 될 수도 없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면 가축처럼 살다 사라진다 자연의 동물에 비해 인간이 가진 안타까운 점은, 인간은 다른 인간을 착취하며 산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먼저 권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다른 이의 삶을 돈이라는 정치도구를 이용해서 삶을 착취한다. 돈 얼마를 받으면 괜찮은 삶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돈을 받으며 내 삶을 넘겨주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의 끝이 보인다. 돈을 받으며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해주는 것, 여물을 먹으며 농부의 밭을 가는 것, 크게 다름이 없다. 그렇게 계속 살다보면 야생에서 살다 길들여진 가축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기분과 감정이 있지만 생각은 없다. 반응이 있지만, 기획과 설계가 없다.
돈에 속아 인생을 계속 넘겨준다 돈은 인생이란 게임의 게임 머니같은 것이다. 게임 머니를 모을 필요는 있지만, 게임 머니만 모으다 게인을 하지 못해서는 안된다. 돈에 속아 그 돈을 받기위해 인생을 계속 타인에게 넘겨주다보면 내 인생을 살 시간을 이미 너무 많이 넘겨줬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기분을 느끼며 결정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런 기분이 된다고 삶도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기분은 1~2시간이면 사라지지만 현실을 지속된다 어떤 기분을 느끼기 위해, 그리고 어떤 기분이 아니라서 우리는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기분은 흘러다니고 사라지고 또 나타난다. 기분은 흘러다니는 어떤 신호이고, 정보다. 그 신호를 느끼려고 삶을 사는 것은 허공을 떠도는 무엇인가를 잡으려 애쓰는 것과 같다. 기분은 왔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그러나 현실, 그리고 나의 인격은 그렇지 않다. 계속 유지된느 좋은 현실을 만들고, 계속 유지되는 품격을 만들자.
다른 사람을 비하하고 남탓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행동이다 몸시 곤란하고 괴로울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그리고 그 사람 탓을 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다. 당신은 좀 더 좋은 대접을 자신에게 받아야 한다. 타인 비하, 남탓은 좋지 않은 기분을 만들어내는 환경을 만들어 자신을 그 속에 놓아둔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타인도 당신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더 자신을 사랑해주자.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핵심이다.
언제나 처음 본 사람에게 말하듯 하자 친하고 심지어 가족이라도 전달하는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처은 본 사람이 들었을 때의 느낌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친하면 더 아무렇게나 자기 기분을 말에 담아 표출한다. 그 기분이 좋지 않으면 비아냥 대고 본인에게도 해로울 말을 가까운 사람, 가족에게 한다. 가족이던, 처음 본 사람이던 전달되는 메세지는 같다. 특히 가족에게 말할 때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말, 말투를 처음 본 사람들은 어덯게 생각할지를.
사람은 실력으로 살고, 동물은 타고난 능력으로 산다 행복도, 내면의 평화도 중요하다. 특히 내면의 평화, 그리고 제로(0)상태에 있는 것은 좋은 선택의 출발점이다. 일단 그것은 기본이되, 그 다음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은 실력이다. 인간은 타고난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능력을 개발해 실력을 만들고 그것을 추구해가는 존재다. 그것이 짐승과 인간의 차이를 만든다. 실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인간의 베이스는 동물이기에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동물에게는 없는 돈을 이해하지 못해 가난하며, 또 실력을 인정하지 않아 오만해지거고 극도로 자신감은 없어진다. 별수 없다. 인간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실력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밖에.
두려움, 기쁨, 우울함 감정은 금방 사라진다. 해야할 일을 해라. 우리는 어려운 기분, 감정을 다스린다고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고 SNS을 본다. 또 즐거운 기분을 표출하기 위해 위 활동을 한다. 어떤 감정, 기분 탓을 하며 해야할 일을 미룬다. 그런데 그런 감정, 기분은 사라지고 해놓은 일만 남는다. 감정, 기분은 사라지고 성과만 남는다. 어떤 기분, 감정에 있다고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지 않는다. 행동은 기분과 상관없이 할 수 있다. 해야할 일을 하고, 성과를 오랫동안 즐겨라.
무사히 죽음에 도달한다 무서워서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안한다. 무서워서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은 이야기들만 한다. 무서워서 주변만 멤돈다. 무서워서 중요하지 않은 일들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사히 죽음에 도달한다. 인생에 아무 일들도, 경험도 없이 무사히 죽음에 도달한다.
뇌의 리모컨의 주인은 누구? 뇌를 가지고 있지만, 그 주인은 내가 아닐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미디어의 소유주가 내 주인이다. 넷플릭스가 내 뇌의 주인이고, 유뷰트가 내 뇌의 주인이다. 포켓몬 빵 제작자가 내 뇌의 주인이고, 진로가 내 뇌의 주인이며, 담배인삼공사가 내 뇌의 주인이다. 내 뇌의 리모컨을 그들이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들의 조종에 따르고 있다. 그렇게 살다 인생이 끝난다. 누군가가 운영하는 가축이 되지도, 누군가의 베터리가 되지도 말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자. 그러려면, 뇌는 내것이 되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법은 어렵지 않아요 그간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음을 생각했다. 항상 무엇인가에 도움이 되고자 했고, 기여하고자 했는데 알게 모르게 난 항상 주변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니 주변에서도 나를 사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나에게 예쁜 옷도 입혀주고, 몸도 깨끗이 씻어주고, 머리도 잘라주고 힘들땐 힘들었냐고 토닥토닥도 해주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